독일 튜닝 시장, 연간 8조원 넘어
자동차를 튜닝한다는 것은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대량 생산된 자동차에 시대 정신이 깃들인 유행과 더불어 차주의
개성을 입히는 행위다. 마치 기성복을 자기 스타일에 맞게 다시 재단하거나 원하는 색상으로 바꾸는 작업과 비슷하다.
기성복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자동차도 출력이라든가 색상, 디자인, 동력성능 등이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모드로 생산될 수밖에 없다.
늘날 튜닝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간단한 액세서리를 붙이는 것부터 엔진과 기어, 서스펜션과 차축, 휠 및 바퀴 등을
바꾸거나 차체의 색상과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등 다양한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차체와 일부 부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을 바꿔버리는 개조자동차나 흔히 커스텀카(Customcar)로 불리는 메이커의 한정판까지 튜닝자동차의
범위에 들어간다. 그래서 유럽 일부 전문가들은 이제 튜닝자동차와 개조자동차 그리고 대량생산업체의 커스터마이징
(Customizing)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 독일에서는 튜닝업체가 독자적으로 개조한 모델을
고유 차종으로 등록해 수제작 업체로 나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나라가 독일이듯 튜닝도 독일에서 먼저 시작됐다. 최초의 본격적인 튜닝회사는 폭스바겐사가
있는 볼프스부르그에 있는 카마이(Kamei)란 회사다. 카마이(Kamei)란 회사 이름은 설립자인 '칼 마이어(Karl Meier)'
이름에서 따왔다. 카마이는 당시 가장 대중적인 모델 비틀에 최초의 스포일러를 장착해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주행
시에도 차체가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주장했고, 1953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처음으로 스포일러를 장착한 비틀을
공개한 바 있다.
70년대와 80년대도 독일에서 튜닝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로텍, 하만, 외팅거, 하르트게, 칼슨, 브라부스,
AMG 같은 유명 튜닝 브랜드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튜닝 회사들이 설립됐다. 1인 기업부터 수 백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업체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독일의 튜닝산업은 2000년대 중반 기준으로 연간 매출액만도 50억유로
(한화 약 8조원)가 넘는 거대한 시장이다. 이 중 대략 50%는 해외 판매로 이어진다고 하니 수출에서도 효자역할을 충실히
한다.
튜닝산업은 제조업이 중심이지만 최근에는 멀티미디어와 디자인부분도 튜닝에 들어가면서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튜닝을 테마로 하는 매거진은 물론 방송컨텐츠를 비롯한 미디어분야만도 경제적 규모는 엄청나다. 해마다 개최되는
이런 저런 크고 작은 튜닝 모터쇼 규모도 커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다음으로 관람객 숫자가 많은 행사가 에센의
튜닝모터쇼다. 여러모로 튜닝산업은 부가가치가 매우 넓은 산업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튜닝사업에는 튜닝 부품을 허가해주고 안전성과 내구성 그리고 성능 등을 시험하고 인증해주는 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이런 기술적인 업무를 맡아 사업을 하는 기술검사대행업체들이 많다. 대표적인 업체가
한국에서도 익숙한 TUEV이나 데크라(Dekra), GTUE 같은 업체들이다. 이런 기술 전문업체도 그렇거니와 그 곳에
근무하는 수 많은 시험기술엔지니어(Pruef-Ing.) 인력도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련 산업과
인력 등을 고려해보면 튜닝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튜닝산업은 거대한 블루오션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9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프리미엄 메이커도 이제 튜닝자동차란 단어 대신 퍼포먼스 자동차, 인디비듀얼 자동차란
다소 새로운 개념의 용어를 내세우며 튜닝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좋은 예가 벤츠의 자회사인 AMG, BMW의 M,
아우디의 아우디 스포트(Sport), 오펠의 OPC 등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외형상 다른 튜닝회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만 메이커와 긴밀하게 연동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개발에 참여해 일개 튜닝회사가 개발하는 것과는 품질과
서비스에서 차원이 다르다. 특히 퍼포먼스 부분에서는 메이커와 시스템을 구성, 개발하기에 다른 튜닝업체 대비
완성도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 메이커에 속한 업체 모두는 튜닝모델 혹은 튜닝자동차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고유의 모델명을 갖거나 퍼포먼스
모델 혹은 인디비듀얼 모델로 부른다. 일반 튜닝업체와 차이가 있는 만큼 제품은 몰론 가격도 차별화 하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BMW M이나 벤츠의 AMG는 프리미엄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프리미엄으로 평가되면서 품질은 물론 값도
일반인들이 구입하기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자동차튜닝이 불법이었다. 법을 어겨 불법이 아니라 법이 존재하지 않아서 불법이었다. 정부와
공무원들은 그동안 튜닝관련법을 제정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았고, 오히려 튜닝을 그저 부정적으로만 보아 단속해야 할
그 무엇으로만 간주해 왔다. 이제껏 자동차 선진국들의 튜닝시장을 애써 외면하면서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개성적인
자동차를 타려는 튜너들을 끊임없이 단속만 해왔고, 메이커는 은근히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편승해 그저 그런
자동차만 국민들에게 팔아왔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던가'. 메이커는 이제껏 튜닝에 관해
정부에 매를 쥐어주고 모르쇠로 일관해 오다가 이제야 돈이 보이기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하긴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후진 기업에게 무슨 공익개념을 바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속절없이 똑같이 찍어낸 몰개성 자동차를, 그것도 비싼 값에 구입해 타야만 했고 자동차에 간단히
무엇을 붙이는 행위도 무조건 불법부착물로 몰아붙이는, 그야말로 튜닝의 불모지로 남아있게 되었다. 독재시절에는
그런대로 이런 무지막지한 통제가 먹혀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오히려 제대로 된 튜닝 법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서 마구 쏟아지는 불법 부착물이나 불법튜닝을 통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자동차가 무엇인지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 않다보니 바퀴를 구동하는 원동기가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뀌기만 해도 도로상의 자동차로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구체적으로 모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라는 것은 자동차 제작허가를 받은 자가 만든 게
자동차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다보니 외국산 자동차의 국내 인증제도를 보면 더욱 한심하다. 특히 독일에서 수제작된 자동차를 국내에서 인증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독일에선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500대 미만인 경우 제작회사의 인증고유번호 WMI(World Manufacturer
Identifier)를 W09로 주면서 충돌시험이나 기타 인증 조건으로 같은 차체를 사용하는 모델에 갈음하거나 면제해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대량생산업체에 적용되는 법대로 충돌실험데이터를 요구하거나 턱없이 높은 배출가스기준을
맞추라고 요구하는 등 상황에 맞지 않는 법규나 법령을 만들어 놓고 떼를 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예외 조항이란 게
있어 이삿짐이라든가 기타 편법을 동원해 힘이 있거나 든든한 배경이 있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인증을 받기도 한다.
인증과 튜닝에 대해 그 후진성만 놓고 보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주변상황이 바뀌면서 국내에서도 튜닝에 대한 인식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변화가 온 계기는
결정적으로 한국과 미국 그리고 한-유럽 자유무역협정 체결이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 부품시장은 메이커의 순정부품만
인정돼 존재했었고 애프터마켓시장이 지극히 제한돼 부품업체들이 자연스럽게 메이커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고 본격적으로 튜닝시장이 개방되면 부품업체와 튜너 고객들 사이에 직거래가 형성돼
시장규모는 커질 것이고, 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부품업체들이 튜닝시장에 진출할 경우 더 이상 메이커에 노예처럼
종속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쟁쟁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독일의 유수한 중소부품업체들이 생산하는 튜닝부품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겠지만
추후에는 우리나라의 실력 있는 부품업체들이 기술과 품질을 따라 잡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탁월한 손기술이란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특성상 튜닝시장은 지금까지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주축이 되어 왔다. 대기업이 끼어들기엔 여러모로 부적합하다고 여겨져 온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튜닝산업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젠 대기업도 메이커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규모만 커진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보다 체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튜닝시장은 그
판도가 달라지고 지형이 변화하는 시점에 놓여있다. 이런 추세를 감지한 우리나라의 몇몇 메이커들도 유럽과의 본격적인
자유무역협정체결을 하면서 부랴부랴 튜닝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과 부품업체들이
선도해야 할 부품산업에 꼴사납게 입맛은 메이커가 먼저 다시는 모양새다. 한정판 어쩌구하면서 인디비듀얼 모델을
선보이겠다며 설친다. 그동안 그렇게 외면하면서 배척해오던 튜닝시장에 염치없게도 욕심을 부린다. 아마 조만간 벤츠의
AMG나 BMW의 M과 같은 튜닝 자회사를 설립하려 들 것이다. 우리의 메이커는 언제까지 프리미엄 바나나에 환장한
원숭이만 닮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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